[문화인] 기노철 화백-여든을 넘긴 노 화백의 열정으로 담은 수원 화성 16경
[문화인] 기노철 화백-여든을 넘긴 노 화백의 열정으로 담은 수원 화성 16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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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의 아름다움을 담은 ‘화성 16경’이 여든을 넘긴 노 화백의 예술 혼으로 완성됐다. 올해 여든여섯의 설봉(雪峰) 기노철 화백의 작품이다.

기 화백은 8일 길이 1m20, 가로 50㎝ 16화폭의 화성 16경을 기자에게 선보이며 “혼을 부어 마친 마지막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의 동양화(산수화 부문) 명인으로 인증받은 기 화백은 다양한 활동과 예술혼으로 경기도지사상(1989~1990), 자랑스런 경기인상(2013) 등을 수상하며 지역 원로 예술인으로 인정받았다. 30여 년 전 그가 그린 ‘수원 8경’은 수원의 풍경을 알리는 작품으로 통용됐다.

‘수원8경’은 18세기 정조가 수원화성을 축조한 이후 화성의 봄을 대표하는 춘팔경(春八景)과 추팔경(秋八景), 화성 16경을 지정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진다. 새롭게 만들어진 수원화성의 번영과 발전을 통해 백성들이 풍요롭고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길 원했던 정조의 소망을 담고 있다.

김홍도가 그린 화성 16경은 현재 두 폭만 서울대 박물관에 남아있다.

“사실 수원은 8경 이전에 16경이 있었다고. 아, 내가 꼭 작업을 해야겠다, 내가 완성을 해야겠다 마음을 먹었어요.” 2014년 1월, 기 화백의 나이 일흔아홉일 때였다.

체력은 달렸지만, 작품에 대한 열정은 그를 막을 수 없었다. 당시 수원박물관 학예팀장이던 한동민 현 수원화성박물관장의 조언과 자문으로 화성 16경의 아름다운 경치를 찾아다녔다.

당시 화성 16경이 필요하다는 지역 전문가들의 당위성은 그를 작품에 몰두하게 했다.

200년 전의 풍경과 계절의 변화를 비단에 옮기기란 쉽지 않았다. 학술자료와 고증을 바탕으로 기 화백이 현장에서 느낀 200년 전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화폭에 옮겼다. “화양루에서 눈을 바라보는 풍경인 ‘양루상설(楊樓賞雪)’을 담으려고 한겨울에 지팡이를 짚으며 팔달산 꼭대기에 올랐어요. 나무가 자라고 자연이 사시사철 변해서 온전히 담을 수는 없겠으나, 역사적 사실과 고증을 바탕으로 당시를 내 나름대로 상상하고 떠올리며 스케치했지.”

지팡이 짚고 팔달산, 서장대를 오르기를 수백 번, 작품은 2년 반 만에 완성했다. 이후 양택동 서예가에게 글씨를 맡기면서 다시 작업을 해 2018년이 돼서야 16경 작업을 마쳤다.

노 화백은 작품 완성 후 신경과민과 스트레스로 안압이 높아져 한쪽 눈이 실명 위기까지 와서 수술을 했다. 현재 한쪽 눈이 거의 보이지 않는 상태다. 작품은 현재 여러 사정으로 표구사에 잠들어 있다.

그는 “작품을 완성했을 때 ‘내가 마음먹은 대로 끝내서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작품 활동이 화성 16경이라는 사실에 더욱 감회가 깊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남은 생은 그동안 그린 의미 있는 작품을 많은 이들에게 보여주고, 지역 발전을 위해 사용하려 한다”고 덧붙였다. 아흔을 바라보는 노 화백의 눈에 젊은 기자는 헤아릴 수 없는 눈물이 촉촉이 맺혔다.

정자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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