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도시를 살리는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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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을 끼고 출퇴근하는 즐거움 중 하나는 계절마다 자연의 변화를 체감하는 일이다. 영하 10도 이상 한파가 지속된 요즘, 어느 지점 불문하고 강 한가운데까지 한강이 꽁꽁 얼어붙은 건 처음 봤다. 이른 아침 행주대교를 건널 때, 동쪽에서 떠오른 태양의 높이가 계절마다 그렇게 차이 나는 줄 몰랐다. 아득하게 저만치 있던 겨울의 태양은 여름이면 벌써 중천에 가 있다.

변화는 자연의 속성만은 아니다. 주변 건축물 등 사람이 지어낸 풍경도 변화를 거듭한다. 다만 자연에 비해 그 변화가 더디나 보니 못 느낄 뿐. 아무튼 이런 연유로 나는 건축물을 생명체로 여긴다. 좀 과장하여 시멘트 덩어리인 아파트 단지를 우리는 ‘아파트 숲’이라 부른다. 무생물에도 생명의 온기를 불어넣고 싶은 우리 마음을 담은 표현이다. 르 코르뷔지에는 “집은 인간이 살기 위한 기계”라고 했지만, 건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은 건축(디자인)의 몫이다.

얼마 전 문득, 여의도를 지나면서 풍경 변화를 실감케 하는 생경한 건축물 하나를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운석처럼 없던 게 뚝 떨어져 거기에 서 있는 듯했다. 건물도 생명체란 걸 그때 더욱 실감했다. 한 때 여의도의 랜드마크였던 LG트윈타워 옆에 그보다 두 배 이상 높이로 솟아 있는 빌딩, 파크원(Parc1)이었다. 하늘 높이 걸려 있던 크레인을 보면서 뭔가 짓고 있다 생각했는데, 그 웅장한 몸뚱어리가 실체를 드러낸 것이다.

하늘에 닿는 집을 마천루(摩天樓)라고 한다. ‘한국의 맨해튼’이라는 별명답게 여의도는 이 마천루가 즐비한 곳. 그중에서 이 건물이 유독 나의 눈에 띈 건 ‘새것’ 때문이 아니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시원한 빗줄기 같은, 날렵한 수직 철골 기둥들이 금세 눈에 들어왔다. 수평축 중심의 주변 빌딩과 확연히 대비돼 한껏 긴장감을 높였다. 그다음 눈에 띈 건 색(色)이었다. 모서리 수직 철골 기둥들이 뿜어내는 붉은색은 강렬했다. 여의도엔 전혀 없던 색일뿐더러, 외벽에 이처럼 대담하게 붉은색을 앞세운 현대 건축물을 국내에서 본 적이 없다.

대개 낯선 것은 어색한 법이다. 처음 이 건물을 보았을 때, 나 또한 너무 생경하고 이질적이어서 솔직히 반감이 컸다. 파격이 지나친 건 아닐까?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오가며 보면 볼수록 매력 있는, 시쳇말로 ‘볼매’가 될 줄을 몰랐다. 나중 저명한 건축학자인 이화여대 임석재 교수에게 소감을 털어놓았다. “대가의 품격이란 그런 겁니다. 파격을 보편적으로 설득하는 힘 말이지요.” 임 교수의 평이었다.

파크원은 세계 건축계의 거장 리처드 로저스(88)가 설계했다. 로저스는 2007년 건축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 수상자. 세계 첫 노출 구조의 건축물로 꼽히는 파리 복합문화센터 퐁피두센터는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가끔 유명세는 그 작품 가치에 대한 역설적 반증이 된다. 호불호가 분명한 파크원의 ‘붉은색’도 아직 그런 세평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하지만 느슨한 회색 도시에 생기와 변화를 던진 파격적인 감각은 대가의 품격으로 손색이 없다. 이처럼 건물이 생명을 얻으면 도시도 산다.

정재왈 고양문화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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