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어주는 남자] 설야(雪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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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야(雪夜)

                                           -박용래

 

눈보라가 휘돌아간 밤
얼룩진 벽에
한참이나
맷돌 가는 소리
고산 식물처럼
늙으신 어머니가 돌리시던
오리오리
맷돌 가는 소리

《먼 바다》, 창비, 1984.



이젠 잃어버린 밤의 서정

눈 내리는 밤만큼 고요하고 적막한 풍경은 없다. 설령 눈보라가 휘몰아쳐 소란할지라도 눈을 보는 마음은 적요하다. 날리는 눈은 끝내 어딘가에 쌓여 세사(世事)의 흔적을 한 겹씩 차분히 덮어가기 때문에 그렇다. 그렇게 집 밖의 자잘한 풍경들이 눈에 파묻혀 하얗게 지워지면 집 안의 풍경이 오롯이 돋아난다. 이때 보는 집 안의 면면들은 유난히 따스하고 정겹다. 눈 내리는 밤, 안방 알전구 밑에서는 어머니가 바느질하시고 형제들은 아랫목 이불 속에서 키득대며 장난을 치거나 흑백텔레비전을 보며 귤 한 알을 아껴 먹던 그런 모습들. 그런 소담의 풍경은 이제 찾아볼 수가 없다. 보일러가 일상화되고, 전기가 풍족해 방마다 실내등이 있는 것은 물론이요 텔레비전도 서너 대씩 비치되어 있어 가족들이 한 데 모이기 힘든 게 요즘 세태다. 사정이 그러하니 눈 내리는 겨울밤의 아날로그적인 정취나 향수를 말하는 것이 필경 구닥다리처럼 보일 수밖에 없어 다. 가난했지만, 한없이 따뜻했던 그 시절이 그리워지는 것은 파편화되고 개인화된 지금의 날들이 더없이 냉혹해서일 것이다.

박용래 시인의 시 「설야?는 적막하고, 아득하고, 눈물겹다. 불과 8행의 짧은 시지만 “고산 식물처럼 늙으신 어머니”의 기나긴 삶에 깃든 애환의 사연이 ‘맷돌 가는 소리’에 농축되어 있어 그 여운의 폭이 길고 진하다. 화자는 맷돌 가는 소리를 ‘오리오리’로 표현해 떠올리데, 그 음상(音像)이 마음 저 안쪽까지 깊숙이 파고들어 좀체 사라지지 않는다. ‘오리오리’는 참 많은 느낌을 담고 있다. 윗돌과 아랫돌이 밀착해 내는 가까운 소리로 들리기도 하고, 문득 ‘오리’(五里)라는 먼 거리로 느껴지기도 한다. 눈보라 치는 겨울밤 화자와 어머니가 한 방에 앉아 마주했던 적막의 시간을 걷어내는 사랑의 소리로 다가오기도 하고, 서로 아픔을 헤아리는 울음으로 맴돌기도 한다. 가족을 위해 잠도 자지 않고 한참이나 맷돌을 돌리시던 그때의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혼자 빈방에 앉아 어머니를 회상하는 화자의 마음은 ‘오리’(五里)만큼이나 아득하고 쓸쓸해 보인다.

고된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식구들과 한 방에 모여 앉아 밥을 먹으면서 희로애락을 공유하던 밤의 온기는 이제 사라진 것 같다. 밤의 서정(抒情)이 사라진 시대는 차갑고 인공적이다. 박용래 시인의 시 <설야>는 우리가 잃어버린 밤의 서정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게 한다. 가깝고 소중한 것은 어두워야만 보인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것은 밤에 보는 식구들의 얼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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