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멈춘 카리브의 섬나라 쿠바 여행 에세이] 에피소드3-③
[시간이 멈춘 카리브의 섬나라 쿠바 여행 에세이] 에피소드3-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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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나 비에아의 중세 콜로니얼 건축물 돌아보기
중세 유럽과 쿠바 현대가 만난 ‘아르마스 광장’
‘카스티요 데 라 레알 푸에르자’ 성에서 바라본 ‘모로 성채’ 모습

박물관에 들어서면 콜로니얼시대에 활동하였던 전함과 선상 생활 모습·항해 도구·수중 유물·금과 은덩이가 전시되어 있다. 위층에는 쿠바에서 건조한 많은 선박 모형이 있고, 옥상에는 당시 사용하였던 크고 작은 대포를 볼 수 있으며 이곳은 카리브의 자연경관과 아바나 스카이라인을 감상할 수 있는 멋진 곳이다.

1층에서는 터치스크린을 사용하여 쿠바 사람들이 자랑하는 전함 ‘산티시마 트리니다드’를 감상할 수 있다. 이 배는 1769년 아일랜드해군 건축가 ‘매튜 멀란’의 설계로 아바나에서 건조한 ‘성자의 모후’란 이름을 가졌다. 당시 세계 최대 배수량 4천950t과 112문의 대포로 무장했으며 지브롤터와 케이프 스파르텔 해전에서 무적 스페인 함대의 중심이었다. 하지만 1805년 트라팔가르 전투에서는 큰 덩치 때문에 순발력이 부족한 약점을 파악한 영국 전함의 집중포화를 피하지 못했고 아군의 전투 지원도 원활치 않아 결국 패전의 멍에를 안고 침몰하였다. 그러나 쿠바 사람들은 이전함을 건조한 자긍심과 사랑에는 변함이 없다.

아르마스 광장에 있는 공원의 정원과 쿠바의 영웅 ‘카를로스 마누엘 데 체스페데스’ 조각상

네모 모양의 아르마스 광장 중앙에는 쿠바 영웅 ‘카를로스 마누엘 데 체스페데스’의 하얀 대리석 조각상이 있다.
원래 이 자리에는 스페인 국왕 페르디난드 7세 동상이 놓여 있었으나 쿠바 혁명 후 1955년 공원을 재단장할 때 그 받침대를 넘겨주었다. 돌로 만든 벤치와 분수대를 갖춘 아르마스 광장은 중세 유럽 스타일과 쿠바 현대성을 결합하여 재단장함으로써 아바나를 찾는 관광객과 시민이 즐겨 찾는 공간이다.

아르마스 광장 주변에서 만난거리의 예술단원 모습.
아르마스 광장 주변에서 만난거리의 예술단원 모습.

아르마스 광장 벤치에 앉아 아침에 산 빵과 커피로 간단하게 늦은 점심을 해결한다. 부드러우면서도 진한 향이 사방으로 퍼진다. 이런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것이 배낭여행의 맛이다. 깃발 든 가이드를 따라 이동하는 관광객의 눈총을 받는다. 허름한 옷차림에 아시아인이 점심때를 넘겨 맨 빵을 먹는 모습이 안타까웠을까.

물라토, 메스티소, 흑인과 백인들로 뒤섞인 그들은 스페인어로 소통한다. 카리브제도나 중남미에서 온 여행자로 보인다. 그들은 지리적으로 가깝고 같은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불편함이 없다. 광장을 오가는 관광객을 볼 때, 쿠바는 미국의 경제봉쇄에 따른 어려움을 관광 수입만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1492년 콜럼버스가 상륙하기 전 쿠바는 카리브 주변의 토착 원주민(Ciboney Indians, Arawak Indians)들이 거주했다. 그들의 초기 건축은 아열대 기후에 적합한 생활양식을 기반으로 갈대나 나뭇잎으로 엮어 만든 집이 전부였다. 그들은 곁채 형태인 카네이(Caney), 직사각형 필로티 구조의 대발(Barbacoa)로 지은 카네이, 아메리카 오두막(Bohio)에 살았다.

박태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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